루마니아의 인구 피라미드에는 계단이 하나 있다.
인구 그래프는 대개 완만하다. 전쟁이나 기근이 지나가면 한 칸이 움푹 들어가고, 그 뒤로 몇 해에 걸쳐 서서히 메워진다. 그런데 루마니아의 그래프에는 1966년과 1967년 사이에 수직으로 선 벽이 하나 있다. 한 해 만에 태어난 아이의 수가 거의 두 배가 됐다. 전쟁이 끝난 것도, 전염병이 물러간 것도 아니었다. 그해 가을에 서명된 법령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계단은 한 번 생기면 사라지지 않는다. 해마다 한 칸씩 위로 올라가면서, 그 나이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차례로 요구한다.
01예외 조항에 적혀 있던 것
1966년 10월에 서명된 명령 770호는 흔히 「차우셰스쿠가 낙태를 전면 금지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조문을 열어 보면 그 문장이 지워 버린 것이 보인다.
도식 01한 해 사이 생긴 계단
1966년 10월에 명령 770호가 서명됐고, 이듬해 태어난 아이의 수가 거의 두 배가 됐다. 뛴 자리는 메워지지 않고 그대로 계단으로 남는다.
만든 것자료: Romanian National Institute of Statistics 출생아 수 계열 · Mureșan et al., "Romania: Childbearing metamorphosis within a changing context", Demographic Research 19(23), 2008, Table 1. 인쇄 도식과 같은 계열을 웹에 맞게 다시 그렸다. 개별 연도의 값과 증감률은 표기하지 않았다 — 인쇄판이 검증 범위를 이유로 그 표기를 내린 것을 따랐다. 학급 과밀이나 교육 여건, 혁명 참여는 이 그림이 말하지 않는다.
금지에는 예외가 있었다. 1966년의 조문은 마흔다섯을 넘긴 여성, 이미 자녀가 넷 이상인 여성, 임신이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 강간이나 근친에 의한 임신을 풀어 주었다. 기준선은 그 뒤로 움직였다. 연령 기준이 한때 마흔으로 내려갔다가 되돌아왔고, 1985년 말의 명령 411호가 자녀 수 요건을 다섯으로 올리며 조임쇠를 한 번 더 돌렸다.
예외 조항은 국가가 무엇을 원했는지 그대로 드러낸다. 이미 넷을 낳은 사람과 마흔다섯이 넘은 사람은 놓아주고, 그 사이의 여성만 붙잡았다. 정책의 대상은 「출생아 수」라는 총계가 아니라 특정 연령대 여성의 몸이었다. 그리고 총계를 다루는 일과 몸을 다루는 일은 필요한 도구가 다르다. 집행 수단으로 먼저 붙은 것은 통계청이 아니라 피임기구의 시중 유통 차단과 병원 시술에 대한 보안기관의 감시였고, 가임 여성에 대한 정기 부인과 검진은 1985년의 강화 조치와 함께 제도로 자리 잡았다. 스무 해에 걸쳐 도구가 점점 몸 쪽으로 옮겨 간 것이다.
01이 절의 근거자료 4
- 1967년 출생아 수가 전년의 거의 두 배가 되었고 그 원인이 1966년의 법령이라는 것: Cristian Pop-Eleches, 「The Impact of an Abortion Ban on Socioeconomic Outcomes of Children: Evidence from Romania」,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14(4), 2006 (https://doi.org/10.1086/506336).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논문)
- 1966년 명령 770호의 예외 조항(연령·자녀 수·생명 위험·강간·근친)과 「전면 금지가 아니었다」는 서술: Ancuța Elena Frânț, 「Defining elements of the Romanian legislation on abortion: A historical perspective」, 2014 (https://openalex.org/works/947779e9-774a-4b53-b8fd-ae9b79337802). 루마니아 법령 포털 Decree 770 (https://legislatie.just.ro/Public/DetaliiDocument/177). 확인 수준: 원문(연구논문) / 재인용(조문)
- 시기별 기준 변동과 1985년 명령 411호의 강화(자녀 수 요건 상향, 가임 여성에 대한 정기 부인과 검진의 제도화): Giulia Panfilo, 「The Legacy of Decree 66/770 in Romania: Women's Collective Memory of a Transgenerational Trauma」, Helsinki Romanian Studies Journal, 2024 (https://journals.helsinki.fi/heros/article/download/2457/2049). 검진의 적용 범위(전국인지 직장·학교 단위인지)는 확인하지 못해 「가임 여성을 대상으로」 이상으로 좁히지 않았다. 확인 수준: 원문(논문) / 미확인(적용 범위)
- 피임기구 유통 차단과 병원 시술에 대한 감시: Charlotte Hord, Henry P. David, France Donnay & Merrill Wolf, 「Reproductive health in Romania: reversing the Ceausescu legacy」, Studies in Family Planning, 1991 (https://doi.org/10.2307/1966479).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논문)
02첫 청구서는 낳은 사람에게 갔다
「국가가 한 세대를 만들었다」는 문장은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청구서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그쪽이 아니었다.
1989년 루마니아의 모성 사망은 출생 10만 명당 159명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기록된 가장 높은 값이다. 그해 모성 사망의 87%가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규제가 유지된 스물세 해 동안 불법 시술의 합병증으로 숨진 여성은 공식 집계로 9천 명대다. 마지막 숫자는 정권이 자기 손으로 센 값이므로 상한이 아니라 하한으로 읽어야 한다.
곡선의 모양은 그보다 더 분명하다. 1989년 12월에 규제가 풀리고 이듬해, 같은 수치는 83명이 됐다. 한 해 만에 거의 절반이다. 2010년 무렵에는 10만 명당 20명대까지 내려갔지만 그 스무 해의 감소분에는 의료 체계 전반의 개선이 섞여 있으므로, 법령의 지문이 가장 선명하게 찍힌 자리는 1989년과 1990년 사이다. 사망 원인의 87%가 그 법이 금지한 시술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이 그 사이의 빈칸을 채운다.
02이 절의 근거자료 4
- 1989년 모성 사망 출생 10만 명당 159명, 당시 유럽 최고치, 그 가운데 87%가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에 의한 것이라는 추정, 폐지 이듬해인 1990년 83명으로의 하락: Hord, David, Donnay & Wolf, 1991 (https://doi.org/10.2307/1966479).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논문)
- 규제기 25년간 불법 시술 합병증으로 인한 여성 사망 약 9,452명: 루마니아 공식 집계에 기반한 통용치이며, 집계의 정의(보고 누락 처리, 「불법 시술 관련」의 판정 기준)를 밝힌 원 문헌은 특정하지 못했다. 통제된 통계이므로 본문에서 하한으로 읽도록 지위를 밝혔다. Our World in Data, 「The human cost of unsafe abortions」 (https://ourworldindata.org/the-human-cost-of-unsafe-abortions). 확인 수준: 재인용 / 미확인(집계 정의)
- 2010년 무렵 10만 명당 20명대로의 하락: 위 정리 자료의 국가별 계열. 확인 수준: 재인용
- 임신중지 규제의 완화가 모성 사망을 낮춘다는 일반 명제: Su Mon Latt, Allison Milner & Anne Kavanagh, 「Abortion laws reform may reduce maternal mortality: an ecological study in 162 countries」, BMC Women's Health, 2019 (https://doi.org/10.1186/s12905-018-0705-y).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논문)
03가정이 받지 못한 아이들을 시설이 받았다
1990년 12월, 휴먼라이츠워치는 루마니아의 국가 시설에 10만 명이 넘는 아이가 있다고 기록했다. 보고서는 이 시설들이 출생률을 강제로 끌어올린 정책의 결과를 처리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명시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대다수는 고아가 아니었다. 부모가 살아 있었고, 다만 부양할 수 없었거나 부양하지 않기로 했다. 「고아원」이라는 말이 사태를 감춘다. 국가는 자기가 태어나게 한 아이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글의 질문에 가장 직접적으로 대답하는 자리가 여기다. 나라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준비되지 않은 자리를 시설이 대신 받았다.
03이 절의 근거자료 3
- 1990년 12월 시점 루마니아 국가 시설의 아동 10만 명 이상, 시설 설립 배경, 다수가 부모 생존 아동이라는 기록: Human Rights Watch, 「Romania's Orphans: A Legacy of Repression」 (1990.12) (https://www.hrw.org/report/1990/12/01/romanias-orphans-legacy-repression). 확인 수준: 원문
- 부쿠레슈티 조기개입연구의 설계와 표본(시설 아동 136명을 위탁가정 68명·기존 보호 68명으로 무작위 배정, 기저 연령 6~31개월), 대상 아동의 출생이 1990년대 말 무렵에 몰린다는 역산: Lucy S. King et al., 「A comprehensive multi-level analysis of the Bucharest Early Intervention Project」,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2023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0751847/).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논문)
- 무작위 배정을 둘러싼 연구윤리 논쟁, 그리고 연구가 아동을 새로 시설에 보낸 것이 아니며 당시 표준 위탁보호 체계가 없었다는 맥락: Maria G. Master & Joseph J. Fins, 「The Welfare of Children, Research Ethics, and the Bucharest Early Intervention Project」,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https://doi.org/10.1093/med-psych/9780190647254.003.0008), 및 관련 윤리 검토 (https://pubmed.ncbi.nlm.nih.gov/22373763/). 확인 수준: 원문(단행본 장) / 재인용(검토)
04계단이 도착하는 순서
세대를 만드는 일은 한 번의 결정이지만, 받는 일은 해마다 다른 기관의 몫이다.
1966년의 명령이 1967년의 산부인과에 도착한다. 여섯 해쯤 뒤에는 초등학교 교실에, 1980년대 중반에는 대학과 징병과 첫 일자리에, 그 뒤에는 주택과 가족 형성에 도착한다. 인구 피라미드는 예언서처럼 읽히지만 실제로는 달력에 가깝다. 어느 해에 무엇이 필요해질지가 태어난 순간에 이미 적혀 있다.
이 달력의 각 칸에서 루마니아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는 고르지 않게 남아 있다. 학급당 학생 수와 교대수업 부제와 학교 신설을 연도별로 이어 붙인 공식 교육통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되는 것은 계단 자체를 계량한 연구 안의 증거다 — 학교 체계가 그 수에 밀렸다는 대목이, 게재본에는 남지 않고 작업논문 판본에만 있다. 원 통계표가 없다는 것과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계단이 도착했고, 도착한 자리가 눌렸다는 사실까지다.
그리고 이 대목에는 제동이 하나 필요하다. 명령 직후에 태어난 코호트의 성취를 단순 평균으로 보면 교육 연수도 노동시장 성과도 오히려 좋아 보인다. 크리스티안 팝-엘레케스의 연구는 그 착시의 정체를 짚는다. 금지 이전에 임신중지를 더 많이 이용하던 쪽이 도시의 교육받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금지 이후 추가된 출생이 그 가정들에 몰렸다. 세대의 구성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관찰 가능한 가정 배경을 통제하고 나면 결과가 뒤집힌다 — 이 코호트의 성과는 앞뒤 세대보다 나빴다. 다른 자료로 농촌 코호트만 따로 본 뒤의 연구도 같은 방향을 얻었다.
정책은 세대의 크기만 바꾼 것이 아니라 누가 그 세대의 부모가 되는지도 바꿨다. 평균 하나를 들고 있으면 정책의 효과를 정반대로 읽을 수 있다.
계단이 성인의 문 앞에 도착한 해에 나라가 꺼낸 것은 배급표였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루마니아는 외채를 갚기 위해 국민에게서 자원을 회수했다. 수입을 틀어막고 달러를 쌓는 동안 소비가 극적으로 압축됐다는 것이 이 시기에 대한 학술적 정리다. 빵과 우유와 식용유가 배급됐고, 전기와 지역난방이 자주 끊겼으며,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온수는 주 1회로 제한됐다. 자가용 소유자가 한 달에 살 수 있는 연료는 30리터였다. 1983년까지 생활수준이 19~40% 떨어졌다는 추산도 있다 — 이 생활 세부와 하락폭은 여러 자료가 서로를 참조하며 반복해 온 개략치이고, 원자료까지 거슬러 확인되지는 않는다.
1967년에 태어난 사람은 긴축이 시작되던 해에 열네 살이었고, 정권이 무너지던 달에 스물두 살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일자리와 집을 찾아야 할 기간 전체가 그 안에 들어 있다. 국가는 이 세대를 부를 때는 법령을 썼고, 받을 때는 배급표를 줬다.
04이 절의 근거자료 7
- 코호트가 산부인과·보육·학교·대학·노동시장·주거에 차례로 도착하는 시간표: 세 독립조사가 시간축에 합의한 범위. 확인 수준: 재인용
- 루마니아의 학급 규모·교대수업·학교 신설을 연도별로 이은 공식 교육통계 시계열은 확보하지 못했다. 확인 수준: 미확인(부정적 확인)
- 코호트 규모가 학교 체계에 과밀을 낳았다는 계량 증거: Cristian Pop-Eleches, 「The Impact of an Abortion Ban on Socio-Economic Outcomes of Children: Evidence from Romania」 작업논문 판본 (https://openalex.org/works/6e4c6f54-8608-4f55-bab4-fd2a2a844179). 논문 내부 증거이며 공식 교육통계 원표와는 다른 물건이다. 2006년 게재본 (https://doi.org/10.1086/506336) 초록에는 이 서술이 없어 본문에서도 작업논문 판본의 증거임을 밝혔다. 게재본 본문을 절 단위로 대조하지는 못했다. 확인 수준: 원문(작업논문 초록) / 원문(게재본 초록, 부재 확인) / 미확인(게재본 본문 절 대조)
- 단순 평균에서는 성과가 좋아 보이지만 가정 배경을 통제하면 역전되는 구성 효과: Pop-Eleches, 2006 (https://doi.org/10.1086/506336). 확인 수준: 원문
- 다른 자료(2002년 인구총조사)로 농촌 1967년생 코호트의 교육 성과 저하를 재현한 독립 검증: Larissa Flister, 「Socioeconomic Consequences of Romania's Abortion Ban under Ceaușescu's Regime」, 2013 (https://openalex.org/works/858117cd-8252-40e2-b36f-50b0f4f5194c). 확인 수준: 재인용
- 1981~1989년 외채 상환 긴축의 성격과 「극적으로 압축된 소비」, 그리고 1989년 시점에 정권의 경제적 정당성이 소진되었다는 정리: Cornel Ban, 「Sovereign Debt, Austerity, and Regime Change」, East European Politics and Societies and Cultures, 2012 (https://doi.org/10.1177/0888325412465513). George Georgescu, 「Romania's Foreign Debt Crisis in the 1980s」, 2018 (http://www.workingpapers.ro/2018/wpince181010.pdf).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논문) / 재인용(작업논문)
- 배급 품목, 온수 주 1회, 연료 월 30리터, 1983년까지 생활수준 19~40% 하락 추산: 학술 원자료로 확인하지 못한 개략치이며 본문에 그 지위를 밝혔다 (https://en.wikipedia.org/wiki/1980s_austerity_policy_in_Romania). 확인 수준: 재인용
05이 이야기가 여기서 하고 싶어 하는 말
여기까지 오면 다음 문장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 차우셰스쿠를 무너뜨렸다.
날짜가 맞는다. 1989년 12월 티미쇼아라에서 시작된 항의가 부쿠레슈티로 번졌을 때 1967년생은 스물두 살이었다. 학생과 젊은 노동자가 거리에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 세대에게는 이름까지 있다 — 루마니아어로 「명령의 아이들」을 뜻하는 데크레체이(decreței)다. 법령 번호가 한 세대의 별명이 된 것이다. 그리고 새 정부가 가장 먼저 되돌린 조치 가운데 하나가 명령 770호의 폐지였다. 혁명 며칠 뒤, 성탄 무렵이었다.
그런데 이 결말에는 빠진 자료가 하나 있다. 1989년 12월 시위 참가자의 연령 구성을 계측한 자료다. 「1967년 코호트가 다른 연령대보다 높은 비율로 참여했다」를 지지하는 통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나이가 겹친다는 것은 참여의 증거가 아니다. 그해에 스물두 살이었던 사람들이 거리에 있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해에 스물두 살이었던 모든 나라의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잘 만들어진 결말일수록 검증을 건너뛰고 유통된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다른 설명이 이미 서 있다. 부채를 갚느라 소비를 압축한 8년이 정권의 경제적 정당성을 다 써 버렸다는 설명은, 앞 절의 배급표 장면과 정확히 같은 재료 위에 있다. 국가가 이 세대를 받을 때 배급표를 준 일은 세대의 이야기이기 전에 정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기서 멈추자. 국가는 계단을 만들었다. 그 계단이 스스로 국가를 무너뜨렸는지는, 적어도 지금 우리가 손에 쥔 자료로는 말할 수 없다.
05이 절의 근거자료 6
- 1989년 12월 혁명의 전개와 티미쇼아라에서의 발단, 학생 참여의 기록: Matei Călinescu & Vladimir Tismăneanu, 「The 1989 Revolution and Romania's Future」, 2019 (https://doi.org/10.4324/9780429304941-3). Lucian-Vasile Szabo, 「Challenges to Democracy: From the Tiananmen Square to Timisoara」, Trames, 2020 (https://doi.org/10.3176/tr.2020.1.06).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논문)
- 1989년 12월 시위 참가자의 연령 구성을 계측한 자료를 세 독립조사와 학술 검증 모두 찾지 못했다. 확인 수준: 미확인(부정적 확인)
- 부채·긴축이 정권의 경제적 정당성을 소진시켰다는 경쟁 설명: Cornel Ban, 2012 (https://doi.org/10.1177/0888325412465513).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논문)
- 1989년의 서술이 이후 어떻게 신화화되었는지에 관한 사례: Lucian-Vasile Szabo, 「Mass media, and enigma of Timisoara's 4,632 deaths in December 1989」, 2014 (https://doaj.org/article/f94f275cbbc745ccb18a2143671bede4). 확인 수준: 재인용
- 「데크레체이(Decrețeii)」라는 명칭의 학술 용례: Panfilo, 2024 (https://journals.helsinki.fi/heros/article/download/2457/2049). 확인 수준: 원문
- 명령 770호의 폐지 시점: 자료에 따라 1989년 12월 25일과 26일로 갈리므로 「혁명 며칠 뒤, 성탄 무렵」으로만 적었다. Dario Pierotti, 「From abortion to contraception in Romania」, 1991 (https://openalex.org/works/5e029faa-ab68-435f-968e-692d5aa83aa9). 확인 수준: 재인용
06아무도 명령하지 않은 계단
계단을 만드는 데 명령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도 인구 피라미드에 두꺼운 칸이 생겼다. 여기서는 아무도 더 낳으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순서가 어긋났을 뿐이다. 예방접종과 식수와 기초 의료가 보급되면서 영유아·아동 사망률이 먼저 빠르게 떨어졌고, 출산율은 한참 뒤에야 따라 내려왔다. 그 사이의 시차 동안, 태어난 아이의 수가 크게 늘지 않아도 살아남는 아이의 수는 계속 늘었다.
이집트에서는 1980년대 초·중반에 사망률이 빠르게 떨어지는 동안 출산율이 아직 높은 자리에 있었다. 그 시차가 이후 청년 인구의 두께를 만들었다. 이 전환을 정리한 연구들이 고르지 않게 떨어졌다는 말을 쓴다. 나라별로 시점과 속도가 다르므로 「아랍권」을 하나의 파동으로 묶어 말할 수는 없지만, 방향은 공통이고 뒤따라온 압력이 도착한 자리도 공통이다 — 학교와 노동시장, 그리고 결혼과 가족 형성의 시기.
여기서 루마니아와의 대비가 성립한다. 루마니아의 계단은 정책의 산물이었고, 이쪽의 계단은 성취의 산물이었다. 아이를 더 많이 살려낸 보건 사업의 성공이 스무 해 뒤에 노동시장의 압력으로 돌아왔다. 「국가가 세대를 만들었다」는 말은 명령으로도 성립하고 백신으로도 성립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후자 쪽이 훨씬 흔하다.
06이 절의 근거자료 2
- 사망률과 출산율이 고르지 않게 떨어지면서 지역 차원의 유스 벌지가 형성됐고, 그 압력이 학교와 노동시장에, 그리고 고용·결혼·가족 형성의 지연으로 이어졌다는 정리: David Beck & Paul Dyer, 「Demographic Transitions across the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https://doi.org/10.1093/acprof:oso/9780190224615.003.0002). 확인 수준: 원문(학술 단행본 장)
- 이집트의 1980년대 초·중반 사망률 하락과 출산율의 시차: Economic Research Forum, 「Demographic pressures on the Egyptian labour market」 (2023) (https://theforum.erf.org.eg/2023/04/04/demographic-pressures-on-the-egyptian-labour-market/). 연도별 계열까지 대조하지 못해 「1980년대 초·중반」 이상으로 좁히지 않았다. 확인 수준: 원문(연구기관 기고) / 미확인(연도별 계열)
07받겠다고 문서로 약속한 뒤에
이집트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하면 정확하지 않다. 이집트는 받겠다고 문서로 약속했다.
1961~62년 정부는 대학 졸업자에게 공공부문 일자리를 보장했다. 1964년 법률 14호가 실업계 고교와 기술전문학교 졸업자까지 대상을 넓혔고, 1973년 법률 85호가 이것을 영구 제도로 만들었다. 약속은 곧바로 교육 수요를 움직였다. 초등학교 취학은 1952년 100만 명에서 1965~66년 약 350만 명으로 늘었고, 대학 재학생은 같은 기간 5만 명에서 9만 7천 명이 됐다.
그리고 줄이 생겼다.
| 시점 | 지표 | 값 |
|---|---|---|
| 1961~62 | 대졸자 공공부문 고용 보장 시작 | — |
| 1977 | 지원자 대 자리 비율 | 1.2 |
| 1981 | 지원자 대 자리 비율 | 5.1 |
| 1986 | 대졸 실업률 (같은 해 전체 실업률 약 12.3%) | 25.9% |
| 1987 | 발령까지의 대기 기간 (대졸 / 실업계 중등·기술전문) | 5년 / 6년 |
| 1995 | 가장 최근에 발령받은 졸업 연도 (대졸 / 실업계 중등·기술전문) | 1983년 / 1982년 |
| 1995 | 1984~90년 졸업자 중 여전히 공직 대기 중 | 36.5% |
표 읽기표는 세로로 읽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약속과 자리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다. 값이 둘로 나뉜 칸은 학력 계열에 따라 대기의 길이가 달랐다는 뜻이고, 값이 없는 칸은 그 해가 제도의 시작점이라는 뜻이다.
마지막 세 줄이 이 표의 무게를 지고 있다. 1995년 기준으로 국가가 가장 최근에 발령을 낸 것은 1983년에 졸업한 대학생이었다. 열두 해가 밀려 있었다 — 약속 전체의 지연 기간이 아니라 그해에 관찰된 적체의 끝점이다. 그리고 1984년부터 1990년 사이에 졸업한 사람의 3분의 1 이상이 그때까지도 줄에 서 있었다.
국가는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받겠다고 약속해 놓고 그 약속을 닫았다. 오래 통용된 해석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 받겠다는 약속이 사람들의 교육 선택을 바꿔 놓았으므로, 국가는 자기가 받지 못할 사람들을 자기 손으로 더 많이 만들어 낸 셈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 한 걸음은 최근에 한 번 흔들렸다. 보장이 교육 이수 자체를 끌어올렸다는 증거는 약하고 이미 늘고 있던 교육받은 인력의 방향을 돌려놓았을 뿐이라는 인과 추정이 나와 있다. 만들어 냈는가와 몰아넣었는가는 다른 문장이고, 지금 그 둘은 갈려 있다.
실업률에는 분모가 있다. 여기 적힌 값은 전체 청년이 아니라 일할 의사가 있고 실제로 구직 중인 사람을 분모로 한다. 그래서 이 수치들은 「청년의 몇 퍼센트가 놀고 있다」가 아니라 「문을 두드리는 사람 중 몇 퍼센트가 아직 못 들어갔다」에 가깝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실업자의 대다수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아니라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2006년 기준으로 전체 실업자의 약 82%가 노동시장에 처음 들어오려는 사람이었다. 경기 침체의 그림이 아니라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넘어가는 문 자체가 막힌 그림이다.
07이 절의 근거자료 8
- 1961~62년 대졸자 공공부문 고용 보장, 1964년 법률 14호의 확대, 1973년 법률 85호의 영구화, 그리고 이 제도가 공직 대기 행렬과 높은 대졸 실업률을 낳았다는 논지: Ragui Assaad, 「The Effects of Public Sector Hiring and Compensation Policies on the Egyptian Labor Market」, World Bank Economic Review 11(1), 1997 (https://doi.org/10.1093/wber/11.1.85).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논문)
- 표의 값 — 지원자 대 자리 비율 1977년 1.2 → 1981년 5.1, 1987년 대기 기간(대졸 5년 / 실업계 중등·기술전문 6년), 1995년 최근 발령 졸업 연도(대졸 1983년 / 실업계 중등·기술전문 1982년), 1984~90년 졸업자 중 36.5%의 대기: 같은 논문. 확인 수준: 원문
- 1986년 대졸 실업률 25.9%와 같은 해 전체 실업률 12.3%: 같은 논문에서 취했으나 학술 검증 단계에서 논문 표와 한 칸씩 대조하는 작업이 완결되지 않았다. 논문이 대졸 실업률을 비대졸의 3~5배로 서술한다는 점까지는 확인됐다. 확인 수준: 원문(출처) / 미확인(칸 대조)
- 초등 취학 1952년 100만 명 → 1965~66년 약 350만 명, 대학 재학생 5만 명 → 9만 7천 명: 같은 논문. 절대값의 기준연도 정의(학년도·역년, 공립·전체)는 재확인하지 못했다. 확인 수준: 원문 / 미확인(기준연도 정의)
- 고용 보장이 중등·대학 교육 수요를 밀어 올렸다는 서술: 같은 논문. 본문은 이 인과를 확정 사실이 아니라 오래 통용된 해석의 지위로 적었다. 확인 수준: 원문
- 보장이 교육 이수를 끌어올렸다는 증거는 약하고 이미 늘고 있던 교육받은 인력을 재배치했을 뿐이라는 상반된 인과 추정: Yasmine Elkhateeb, Nelly Elmallakh, Luca Flabbi, Roberta Gatti & Mohamed Saleh, 「Labor Market Effects of Public Employment Guarantee」, World Bank, 2026 (https://doi.org/10.1596/1813-9450-11431). 확인 수준: 재인용(초록)
- 2006년 기준 전체 실업자의 약 82%가 최초 진입자이며 느린 학교-노동시장 이행이 높은 실업률의 주된 이유라는 진단: Diego F. Angel-Urdinola & Amina Semlali, 「Labor Markets and School-to-Work Transition in Egypt」, World Bank, 2010 (https://doi.org/10.1596/22291). 확인 수준: 원문
- 실업률의 분모가 경제활동인구라는 점: Assaad, 1997. 확인 수준: 원문
08학위가 기다리는 시간을 늘렸다
튀니지에서는 같은 문제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났다.
2009년 튀니지의 전체 실업률은 13.3%였다. 10년 동안 연평균 5% 안팎의 성장을 유지한 나라의 수치다. 같은 해 대학 졸업자의 실업률은 21.9%로, 2006년의 16.9%에서 올라온 값이었다. 성장하는 경제에서 학위를 가진 쪽의 실업률만 3년 만에 5%포인트가 오른 것이다. 좁혀 볼수록 값은 커진다. 2007년 기준으로 법학·경제·경영 석사 학위를 가진 23~29세의 실업률은 47%였다. 기다리는 시간도 달랐다. 같은 시기 대졸자의 평균 실업 지속 기간은 28.2개월, 비졸업자는 18.8개월이었다.
이 숫자들은 각각 다른 분모 위에 서 있다. 연도가 다르고, 연령대가 다르고, 전공과 성별의 범위가 다르다. 하나의 대표값으로 합칠 수 없고, 합치면 어느 쪽이든 과장이 된다. 그래도 방향은 한 줄로 읽힌다. 2000년대 후반의 튀니지에서 학위는 취업 확률을 낮췄고 기다리는 시간을 늘렸다.
대학을 더 지은 것은 국가 역량의 실제 확대였다. 다만 교육정책이 산업정책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교육받게 할 준비」와 「교육받은 사람을 받을 준비」는 다른 일이다.
그런데 이 설명에는 함정이 하나 있다. 「국가가 대학은 지었지만 일자리는 못 만들었다」는 문장은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을 다시 한번 지운다. 튀니지에서 학교와 노동시장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청년의 다수는 대학 졸업자가 아니라 바칼로레아를 마치지 못한 쪽이었다. 내륙과 해안의 격차, 비공식 노동,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은 대졸 실업률이라는 지표에 잡히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음은 학교를 일찍 떠난 사람을 통계 바깥에 두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08이 절의 근거자료 6
- 2009년 튀니지 전체 실업률 13.3%, 대졸 실업률 2006년 16.9% → 2009년 21.9%: Maher Gassab & Hanène Ben Ouada Jamoussi, 「Determinants of Graduate Unemployment in Tunisia」, 2011 (http://www2.almalaurea.it/universita/pubblicazioni/wp/pdf/wp16.pdf). 1차 원고의 「대졸 약 40% / 비대졸 24%」는 분모를 특정할 수 없어 이 전국 계열로 교체했다. 두 계열의 실업 정의가 같은지는 대조하지 못했다. 확인 수준: 재인용 / 미확인(정의 대조)
- 2007년 법·경제·경영 석사 학위 23~29세의 실업률 47%, 실업 지속 기간 대졸 28.2개월·비대졸 18.8개월: Marco Stampini & Audrey Verdier-Chouchane, 「Labor Market Dynamics in Tunisia: The Issue of Youth Unemployment」, AfDB Working Paper 123 / IZA DP 5611, 2011 (https://docs.iza.org/dp5611.pdf). 이 논문의 데이터 구간은 2005~2007이므로 1차 원고가 세 수치에 일괄로 붙였던 「2010년」 표지를 걷었다. 확인 수준: 원문(작업논문)
- 튀니지 청년이 남녀 모두 장기 실업을 겪을 가능성이 특히 높다는 국제 비교: Ragui Assaad & Caroline Krafft, 「Labour market dynamics and youth unemployment in the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Labour, 2023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labr.12257). 확인 수준: 재인용
- 웨이트후드 개념의 제안자가 정치학자 다이앤 싱어만이고 알신다 혼와나가 아프리카 맥락으로 넓혔다는 계보, 그리고 자발적 대기와 젠더 축을 포함한 네 갈래: Marcia C. Inhorn & Nancy J. Smith-Hefner (eds.), 『Waithood: Gender, Education, and Global Delays in Marriage and Childbearing』, Berghahn Books, 2020 (https://doi.org/10.3167/9781789208993). Nancy J. Smith-Hefner & Marcia C. Inhorn, 「Gender and Waithood」, Th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Anthropology, 2024 (https://doi.org/10.1002/9781118924396.wbiea2535). Alcinda Honwana, 「'Waithood': Youth Transitions and Social Change」, 2014 (https://doi.org/10.1163/9789004269729_004). 확인 수준: 원문(서문·백과 항목)
- 학교와 노동시장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튀니지 청년의 다수가 바칼로레아 미이수층이라는 점: World Bank, 「Tunisia: Breaking the Barriers to Youth Inclusion」 (https://www.worldbank.org/en/country/tunisia/publication/tunisia-breaking-the-barriers-to-youth-inclusion). 확인 수준: 재인용
- 내륙·농촌 격차와 젠더 격차가 실업 지속 기간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한 연구: Farouk Kriaa, Bouhari Mohamed & Yamina Mathlouthi, 「Determinants of unemployment duration for young men and women in Tunisia」, Economics Management and Sustainability, 2020 (https://jems.sciview.net/index.php/jems/article/download/100/79). 같은 연구는 2014년 패널에서 교육이 실업 지속을 줄이는 방향의 결과를 얻었으므로, 본문의 판정에 「2000년대 후반의 튀니지에서」라는 시점 한정을 붙였다. 확인 수준: 재인용
09우리가 그를 부르던 이름
2010년 12월 시디부지드에서 노점상 한 사람이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초기 보도와 그 뒤로 반복된 서술은 그를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과일 수레를 끌던 청년으로 그렸다.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중등 과정의 끝 무렵까지 갔고, 열여덟 무렵 학교를 떠나 일을 시작했다. 그는 비공식 노점으로 가족을 부양했고, 상품을 압수당하고 지방 행정의 모욕을 받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오보 자체가 아니라 그 오보가 얼마나 쉽게 믿겼는가다. 대졸 실업자의 이야기는 그 사회가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앞 절의 숫자들이 몇 해 동안 쌓아 온 형상이 있었고, 새 인물은 그 형상 안으로 매끄럽게 들어갔다. 사실 확인보다 공명이 빨랐다.
그리고 정정도 한 번 더 매끄러워진다. 대졸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곧 「고등학교도 못 마친 청년」이라는 반대편 요약이 되어 돌아다녔는데, 자료들이 실제로 말하는 것은 그보다 흐릿하다. 어머니는 바칼로레아 수준에 닿았다고 했고, 다른 취재는 열여덟에 학교를 떠났다고 적는다. 한 사람을 한 문장에 넣으려 할 때마다 그렇게 된다.
그 공명이 정확히 무엇을 지웠는지는 분명하다. 실제 인물은 학위와 자리가 어긋난 사람이 아니라 학교를 떠나 제도 바깥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문제의 자리는 대학의 출구가 아니라 행정 권력 앞의 존엄이었다. 우리가 붙인 이름은 그 세대의 절반만 가리키고 있었다.
한 세대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문장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앞 절에서 검증되지 않은 채 유통되던 문장을 하나 지나왔고, 여기서 하나를 더 지나왔다. 세 번째가 남아 있다.
09이 절의 근거자료 1
-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 어머니 증언의 「바칼로레아 수준」, 열여덟 무렵의 학교 이탈, 비공식 노점·상품 압수·행정의 모욕: TIME, 「Bouazizi: The Man Who Set Himself and Tunisia on Fire」 (https://time.com/archive/6595229/bouazizi-the-man-who-set-himself-and-tunisia-on-fire/). The Guardian, 「Mohammed Bouazizi: the dutiful son whose death changed Tunisia」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1/jan/20/tunisian-fruit-seller-mohammed-bouazizi). Encyclopædia Britannica, 「Mohamed Bouazizi」 (초기 대졸 보도를 오보로 정정)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Mohamed-Bouazizi). 1차 원고의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는 세 자료가 함께 지지하지 않아 물렸다. 확인 수준: 재인용
10방향을 세 번 정한 나라
이란은 이 글의 대조군이다. 루마니아가 한 방향을 정하고 스무 해 넘게 밀어붙였다면, 이란은 한 세대의 생애 안에서 방향을 여러 번 뒤집었다.
1960년대에 이란은 가족계획을 국가 사업으로 폈다. 1979년 혁명과 뒤이은 이란-이라크 전쟁 기간에는 반대로 갔다. 결혼 연령을 낮추고, 피임약 값을 올리고, 신생아에게 성인 몫의 배급을 주는 유인을 붙였다. 국가 사업으로서의 가족계획은 이 시기에 중단됐다. 그런데 중단이 곧 후퇴는 아니었다. 정책이 방향을 되돌리기 전부터 피임 이용이 늘고 출산율이 내려가는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인구는 1968년 2,700만에서 1988년 5,500만으로 두 배가 됐다.
그리고 1989년, 정부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전시의 인구 증가 속도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1년 만에 가족계획을 되살렸다. 목표는 셋이었다 — 첫 출산을 늦출 것, 열여덟 미만과 서른다섯 초과의 출산을 줄일 것, 세 자녀를 상한으로 볼 것. 1993년 법은 공무원의 넷째 이후 자녀에 대한 식량 쿠폰과 유급 출산휴가와 복지 보조를 거뒀고, 결혼 전 가족계획 교육을 의무화했다. 피임 실천율은 1989년 49%에서 1992년 65%, 2000년 74%로 올라갔다. 합계출산율은 1980년 6.58에서 2006년 1.9로 내려갔다. 여성의 초혼 연령은 1986년 19.8세에서 2006년 23.2세가 됐다.
마지막 수치에는 눈여겨볼 것이 하나 있다. 초혼 연령이 올라간 그 기간에도 정부는 조혼을 종교적 가치로 계속 장려하고 있었다. 방향을 정하는 쪽과 실제로 움직인 쪽이 같지 않았던 것이다.
이 하락을 정책 하나가 만들었다고 쓰고 싶은 유혹이 크다. 그러나 같은 기간에 아동 생존이 개선됐고, 여성의 문해율과 교육 연수가 올라갔고, 도시화가 진행됐고, 전후의 경제 조건이 양육 비용을 밀어 올렸고, 원하는 가족 규모 자체가 달라졌다. 이 대목에는 계측이 있다. 농촌 보건소가 세워진 시점의 지역 간 차이를 이용해 프로그램의 몫을 따로 떼어 본 연구는, 1986년부터 1996년 사이 출산율 하락 가운데 보건소가 설명하는 부분을 4%에서 20% 사이로 추정한다. 폭이 넓고 구간이 한정된 값이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연구자들 자신이 문해율과 학교 접근이 더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정책은 이미 형성되고 있던 선택을 가능하게 하고 넓혔다.
그리고 그 「가능하게 함」의 실체가 이란 이야기에서 가장 볼 만한 부분이다. 무료 피임, 농촌의 보건소 조직망, 마을 단위의 보건 인력, 결혼 전 교육,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의 수용. 1990년대의 가족계획을 전달한 방식에 한해서 말하면, 이란은 강제하지 않았다. 이미 깔려 있던 1차 보건망을 통로로 써서 피임 수단과 상담을 생활권의 마지막 1킬로미터까지 보냈다. 루마니아의 감시와 이란의 접근성은 서로 다른 기계다.
2012년 이후 방향이 다시 바뀌었다. 최고지도자가 기존 정책을 잘못이라고 규정했고 예산이 깎였다. 2021년 법은 불임 시술을 금지하고 무상 피임 제공을 임신이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로 제한했다. 그 뒤 출산율이 얼마나 되돌아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국가는 제도의 문을 닫을 수 있다. 한 번 달라진 생활 방식과 기대를 명령으로 되돌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 조혼을 장려하는 동안 초혼 연령이 올라가던 스무 해가 이미 그것을 보여줬다.
10이 절의 근거자료 5
- 1960년대의 가족계획 도입, 전쟁기의 친출산 전환과 국가 프로그램 중단, 1989년의 재개, 1993년 법, 피임 실천율 1989년 49%→1992년 65%→2000년 74%, 합계출산율 1980년 6.58 → 2006년 1.9, 여성 초혼 연령 1986년 19.8세 → 2006년 23.2세: Amir H. Mehryar, Seemeen Saadat & Sadia Chowdhury, 「Fertility Decline in the Islamic Republic of Iran 1980–2006: A Case Study」, World Bank, 2010 (https://doi.org/10.1596/27494). 프로그램 개시 연도를 1967년으로 못 박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아 「1960년대」로 넓혔다. 1993년 법의 조항과 단일값들은 보고서 본문의 해당 표까지 대조하지 못했다. 확인 수준: 원문(사례연구) / 미확인(표 대조)
- 1989년 정책 전환 이전부터 피임 이용 증가와 출산율 하락의 조짐이 있었다는 서술,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이 1차 보건망과의 통합 및 종교 지도자의 수용이라는 정리, 정부가 조혼을 종교적 가치로 계속 장려하는 동안 초혼 연령이 올라갔다는 역설: A. Mehryar, B. Delavar, G. A. Farjadi, M. Hosseini-Chavoshi & M. Naghavi, 「Iranian miracle: How to raise contraceptive prevalence rate to above 70% and cut TFR by two-thirds in less than a decade?」, 2001 (https://openalex.org/works/716d0e0c-a419-47ad-85b7-a54bdfb83f25). 확인 수준: 원문(학회 논문)
- 1986~1996년 출산율 하락 가운데 농촌 보건소가 설명하는 몫이 4~20%이며 문해율과 학교 접근이 더 큰 역할을 했으리라는 추정: Djavad Salehi-Isfahani, Mohammad Jalal Abbasi-Shavazi & Meimanat Hosseini-Chavoshi, 「Family planning and fertility decline in rural Iran: the impact of rural health clinics」, Health Economics, 2010 (https://doi.org/10.1002/hec.1613).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계량 평가)
- 전쟁기 유인책의 세부(결혼 연령 인하, 피임약 가격 인상, 신생아 배급)와 인구 1968년 2,700만 → 1988년 5,500만: World Bank, 2010과 Mehryar et al., 2001의 대조. 피임약 가격의 단일값은 확인되지 않아 본문에서 「값을 올리고」로만 적었다. 확인 수준: 원문 / 미확인(단일값)
- 2012년 이후의 정책 재역전과 2021년 법의 내용(불임 시술 금지, 무상 피임 제한): (https://www.mdpi.com/2076-0760/14/3/188). 동료심사 문헌으로 교차 확인하지 못했고, 출산율 반등의 크기도 확인하지 못해 본문에서 그 지위를 밝혔다. 확인 수준: 재인용 / 미확인(반등의 크기)
11같은 숫자를 반대로 읽는 두 사람
이제 세 번째 문장이다. 청년 인구가 두꺼우면 봉기한다.
이 명제에는 실제 연구가 있다. 헨리크 우르달은 유스 벌지를 성인 인구(15세 이상) 가운데 15~24세가 차지하는 비율로 정의하고, 이 비율이 큰 나라에서 국내 무장분쟁과 테러와 폭동 세 가지의 위험이 함께 높아지는 연관을 보고한다. 다만 대중적으로 인용될 때 사라지는 것은 그가 붙인 조건절들이다. 결정론적 관계는 없다고 그는 명시한다. 특정 임계치를 넘으면 위험해진다는 주장은 그 자신이 자료로 기각했다. 효과는 경제적 곤란과 결합할 때 커진다. 중등교육의 제공은 분쟁 위험을 낮추고, 중등교육의 급격한 확대 자체는 일반적으로 분쟁을 유발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연구자는 고등교육의 확대가 두꺼운 청년층·경제 침체와 겹칠 때 테러 위험이 높아지는 쪽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인구 전환의 초기 국면에 있는 나라들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관계가, 부양비가 낮아진 나라들에서는 약해진다.
조건절을 다시 읽어 보면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보인다. 위험을 만드는 것은 코호트의 크기가 아니라 그 코호트가 통과하는 제도의 상태다. 이론 자체가 이미 「받을 준비」를 변수로 쓰고 있었다. 앞 절의 이집트와 튀니지는 그 조건절 안으로 들어온다 — 고등교육이 빠르게 늘고 그것을 받을 자리가 없던 나라들이다.
그리고 같은 통계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읽은 사람이 있다. 리처드 신코타는 15~29세가 생산가능인구의 약 40% 수준으로 내려올 때 그 나라가 안정적인 자유민주주의가 될 확률이 50%에 이른다고 봤다. 이미 자유민주주의로 분류된 나라들이 그 지위를 얻은 시점의 연령 구조를 역산해 얻은 기준선이다. 그는 2008년에 튀니지가 2011년 무렵 그 지점에 도달하리라고 적었다.
한쪽은 젊은 구조를 폭력의 위험으로 읽고, 다른 쪽은 성숙해 가는 구조를 민주화의 조건으로 읽는다. 두 이론은 서로를 반박하지 않는다. 종속변수가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둘을 인구 전환의 앞뒤 국면으로 나란히 놓는 것은 이 글의 배열이지 두 연구가 함께 검증한 결론은 아니다.
신코타가 지목한 것은 봉기의 날짜가 아니었다. 튀니지가 그 확률 지점에 닿는 해였고, 그 해가 2011년이었다. 여기서 이야기를 닫고 싶어진다. 닫지 말자. 2011년 4월에 그 자신이 단서를 달았다 — 튀니지도 이집트도 아직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며, 그 지위를 얻고 유지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그 유보는 지금도 유효하다. 2026년의 국제 평가에서 튀니지는 「부분적 자유」로 분류되고, 2021년 이후의 제도 후퇴가 함께 기록돼 있다. 확률 지점에 닿는 것과 그 지위를 얻어 지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결과는 크게 갈렸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장기 집권자가 물러났고, 요르단과 모로코는 제한적 개혁으로 흡수했고, 걸프의 일부 나라는 재정 지출과 억압을 함께 썼고, 리비아와 시리아와 예멘은 각기 다른 폭력의 경로로 갔다. 조금 더 앞선 사례를 보면 알제리에서 1988년의 폭동이 이듬해 다당제 개방으로 이어졌다가 뒤이어 내전으로 갈라진 일이 있다 — 수치까지 확인되지는 않으므로 경로의 모양만 적는다.
두꺼운 청년층은 이 갈림 중 어느 것도 예언하지 않았다. 봉기가 일어나는가와 봉기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는 아예 다른 질문이고, 인구 구조는 앞의 질문에만 부분적으로 답한다.
시위 참여자를 실제로 살펴본 연구는 그들이 가장 젊고 가장 교육받은 층에 몰려 있었다고 정리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옆에 놓이는 다른 결과다. 마이클 호프먼과 어매니 자말이 봉기 몇 해 전의 여론 조사를 분석한 결과, 당시 청년은 고령층보다 특별히 더 반체제적이지 않았다. 두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질문이 달라진다. 그 세대가 어떤 성향을 갖고 있었는가가 아니라, 문턱이 열렸을 때 누가 먼저 넘어갈 수 있었는가.
11이 절의 근거자료 11
- 유스 벌지의 정의(성인 인구 중 15~24세 비율), 국내 무장분쟁·테러·폭동 세 형태 모두와의 연관, 결정론의 부정, 경제적 곤란과의 결합, 고등교육 확대가 유스 벌지·경제 침체와 겹칠 때 테러 위험이 높아진다는 추정, 부양비가 낮아지면 효과가 약해진다는 결과: Henrik Urdal, 「A Clash of Generations? Youth Bulges and Political Violence」,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50(3), 2006 (https://doi.org/10.1111/j.1468-2478.2006.00416.x). 확인 수준: 원문(동료심사 논문)
- 특정 임계치를 넘으면 분쟁 위험이 특히 커진다는 주장을 저자 자신이 기각했다는 것: Henrik Urdal, 「The Devil in the Demographics: The Effect of Youth Bulges on Domestic Armed Conflict」, 2004 (https://openalex.org/works/97d282b4-1025-47c8-933a-c14471bcb698). 확인 수준: 원문
- 중등교육의 제공이 분쟁 위험을 낮추고 급격한 교육 확대 자체는 일반적으로 분쟁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결과: Bilal Barakat & Henrik Urdal, 「Breaking the Waves? Does Education Mediate the Relationship Between Youth Bulges and Political Violence?」, World Bank, 2009 (https://doi.org/10.1596/1813-9450-5114). 확인 수준: 원문
- 15~29세가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약 40%로 내려올 때 안정적 자유민주주의 확률이 50%에 이른다는 기준선과 그 역산 방법, 2008년의 튀니지 산출: Richard P. Cincotta, 「Half a Chance: Youth Bulges and Transitions to Liberal Democracy」, Environmental Change and Security Program Report 13, 2008/09 (https://openalex.org/works/6e4c01c0-767f-4820-b136-73a1419a2426). 확인 수준: 원문
- 2011년 4월 본인의 유보: Richard Cincotta, 「Tunisia Predicted: Demography and the Probability of Liberal Democracy in the Greater Middle East」, New Security Beat, 2011.04 (https://www.newsecuritybeat.org/2011/04/tunisia-predicted-demography-and-the-probability-of-liberal-democracy-in-the-greater-middle-east/). 확인 수준: 원문
- 2026년 시점 튀니지의 「부분적 자유」 분류(42/100)와 2021년 이후의 제도 후퇴 기록: Freedom House, 「Tunisia 2026」 (https://freedomhouse.org/country/tunisia/freedom-world/2026). 확인 수준: 재인용
- 두 연구를 인구 전환의 앞뒤 국면으로 나란히 놓는 배열이 이 글의 해석이며 두 연구가 함께 검증한 결론이 아니라는 점: 본문에 그 지위를 밝혔다. 확인 수준: 해당 없음(집필자의 배열)
- 아랍의 봄 시위 참여자가 가장 젊고 가장 교육받은 층이었다는 정리: Kristian Paasonen & Henrik Urdal, 「Youth Bulges, Exclusion and Instability: The Role of Youth in the Arab Spring」, Conflict Trends 3, PRIO 2016 (https://www.prio.org/publications/9105). 정책 브리프이며 원 계측 연구가 아니다. 확인 수준: 재인용
- 봉기 이전 조사에서 청년이 고령층보다 특별히 더 반체제적이지 않았다는 보고: Michael Hoffman & Amaney A. Jamal, 「The Youth and the Arab Spring: Cohort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2006~2007 Arab Barometer 분석)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74986340_The_Youth_and_the_Arab_Spring_Cohort_Differences_and_Similarities). 「반체제적」의 문항 정의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 수준: 원문(저자·데이터) / 미확인(문항 정의)
- 같은 지역에서 결과가 갈린 사례군(요르단·모로코의 흡수, 걸프의 재정 지출과 억압, 리비아·시리아·예멘의 폭력 경로): PRIO 정리 (https://www.prio.org/publications/9105). 국가별 연령 구조와 실업 정의를 같은 연도로 맞추지 않았으므로 설명용 사례군으로만 사용했다. 확인 수준: 재인용
- 알제리 1988년 폭동에서 1989년 다당제 개방을 거쳐 내전으로 갈라진 경로: 학술 원자료를 특정하지 못해 수치를 쓰지 않고 경로의 모양만 적었다. 확인 수준: 미확인(부정적 확인)
12달력
이 글의 질문은 과거형이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그 질문이 현재형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1980년대 초에 태어난 큰 코호트가 출산 연령에 도달하면서, 2005년부터 2015년 사이에 이집트에는 두 번째 융기가 생겼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메아리(echo)라고 부른다. 이 코호트가 노동시장에 도착하는 시기는 2030년대다. 노동력의 연간 증가분은 2020~25년의 57만 5천 명에서 2030~35년에는 80만 명으로 커지고, 그 물결의 5~6할은 중등 또는 전문대 과정을, 다시 3분의 1가량은 대학 이상을 마친 사람이 되리라는 계산이 붙는다 — 이집트에서 역사적으로 실업률이 가장 높았던 바로 그 층이다.
여기 적은 것은 모두 전망값이다. 확정된 사실이 아니고, 2026년 시점의 실제 통계와 대조된 값도 아니다. 다만 이 전망이 근거로 삼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이미 태어난 사람의 수다.
그리고 그것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 모양이다. 루마니아는 한 줄의 명령으로 계단을 만들었고, 그 계단이 도착할 때마다 시설과 배급표가 그 자리를 대신 받았다. 이집트는 받겠다고 문서로 약속한 뒤 대기줄을 만들었다. 튀니지는 학위를 나눠 주고 기다리는 시간을 늘렸다. 이란은 만드는 쪽의 방향을 세 번 정하는 동안 받는 쪽에서는 보건망과 학교를 함께 넓혔고, 그래서 결과가 달랐다. 네 나라가 같은 실패를 반복한 것이 아니다. 받지 못한 자리마다 다른 것이 대신 들어왔을 뿐이다.
루마니아 ROMANIA
- 명령 770호
- 출생아 수 급증
- 외채 상환 긴축
- 명령 770호 폐지
튀니지 TUNISIA
- 대졸 실업률 16.9%
- 대졸 실업률 21.9%
- 부아지지 분신
이집트 EGYPT
- 대졸 공공고용 보장
- 보장 확대
- 영구 제도화
- 큰 출생 코호트 형성
- 메아리 세대 출생
- 노동시장 도착 전망
이란 IRAN
- 가족계획 국가사업
- 혁명
- 전쟁과 친출산 전환, 국가사업 중단
- 가족계획 재개
- 식량 쿠폰과 유급 출산휴가와 복지 보조 철회, 결혼 전 가족계획 교육 의무화
- 방향이 다시 바뀜
- 불임 시술 금지, 무상 피임 제공 제한
도식 02네 나라의 시간표
위쪽에는 루마니아와 튀니지, 아래쪽에는 이집트와 이란을 짝지었다. 각 칸을 위에서 아래로 읽으면 한 나라가 통과한 사건의 순서가 보인다.
만든 것자료: 이 글의 근거 가운데 해당 항목. 네 칸은 나라별 사건 순서를 읽기 위한 2×2 배열이다. 칸의 가로 위치와 줄 높이는 사건의 동시성이나 인과관계를 뜻하지 않는다. 본문이 실제로 쓴 사건만 넣었고 네 나라 사이를 잇는 화살표는 두지 않았다. 2030년대 항목은 전망값이다. 560px 이하에서는 한 열로 정렬된다.
루마니아의 인구 피라미드에는 계단이 하나 있다. 그 계단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언하지 않았다. 언제 일어날지만 적어 두었다. 도착하는 사람의 수는 사망과 이주와 진학이 바꾼다. 바뀌지 않는 것은 시각이다.
12이 절의 근거자료 2
- 1980년대 초 출생 코호트의 반영으로 2005~2015년에 태어난 「메아리」 세대가 형성됐고, 노동력의 연간 증가분이 2020~25년 57만 5천 명에서 2030~35년 80만 명으로 커지며, 신규 진입자의 5~6할이 중등 또는 전문대 과정을, 다시 3분의 1가량이 대학 이상을 마친 사람이 되리라는 전망: Ragui Assaad, 「Beware of the echo: the evolution of Egypt's population and labor force from 2000 to 2050」, Middle East Development Journal 14(1), 2022 (https://doi.org/10.1080/17938120.2021.2007649). 전망값이며 2026년 시점의 실제치와 대조하지 않았다. 확인 수준: 원문(논문 초록) / 미확인(본문)
- 같은 메아리 현상을 정치적 함의까지 확장한 후속 논의: Andrey Korotayev & Julia Zinkina, 「Forthcoming youth bulge in Egypt: possible sociopolitical implications」, The Journal of North African Studies, 2023 (https://doi.org/10.1080/13629387.2023.2247992). 확인 수준: 재인용
생각해볼 질문
한 세대가 도착할 시각은 그들이 태어난 해에 이미 적혀 있고, 어느 나라든 그 숫자를 스무 해 전부터 갖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준비하지 않는 일이 이렇게 자주 반복되는 것은, 준비할 방법을 몰라서일까 아니면 그 시각이 지금 결정을 내리는 사람의 임기 바깥에 있어서일까.
오늘의 한 문장
인구 피라미드는 예언서가 아니라 달력이다. 예언은 틀릴 수 있지만 달력은 틀리지 않는다.
더 보고 싶다면
Human Rights Watch, 「Romania's Orphans: A Legacy of Repression」 (1990)
시설의 아이들을 처음으로 세어 본 문서다. 통계보다 먼저 방문 기록이 있다.
Marcia C. Inhorn & Nancy J. Smith-Hefner (eds.), 『Waithood: Gender, Education, and Global Delays in Marriage and Childbearing』 (Berghahn, 2020)
기다림을 실업률 대신 이행의 문제로 보면 무엇이 달리 보이는지 따라간다.
Djavad Salehi-Isfahani, Mohammad Jalal Abbasi-Shavazi & Meimanat Hosseini-Chavoshi, 「Family planning and fertility decline in rural Iran: the impact of rural health clinics」 (2010)
정책이 아니라 정책이 전달된 통로의 몫을 따로 떼어 재 본 연구다.
Henrik Urdal, 「A Clash of Generations? Youth Bulges and Political Violence」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2006)
「청년이 많으면 봉기한다」는 문장에서 잘려 나간 조건절들이 원문에 다 있다.
익숙한 결, 뜻밖의 결, 남겨진 결.